트로트와 엔카(演 えん 歌 か , 艶歌) 는 얼핏 들으면 참 비슷하다.
예전에 도쿄에서 직장 생활 하던 시절 길을 걷다 우연히 흘러나오는 멜로디도, 가끔 일본 방송에서 들리된 엔카를 듣다보면, 가사만 일본어일뿐 느낌이 한국의 트로트와 뭐가 다를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면 그 속에 담긴 정서의 결이 확실히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음악을 좋아하는 한 팬의 입장에서 두 장르가 걸어온 길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보려 한다.
1. 뿌리는 같지만 결이 다른 음악
엔카( 演 えん 歌 か , 艶歌)는 일본의 대중가요 장르 중 하나로 서양에서 전래한 폭스트롯과 일본민요가 합쳐져 만들어진 장르다.
두 음악 모두 1930년대를 전후해 서양의 리듬과 동양의 선율이 만나면서 뿌리를 내렸다. 트로트는 서양의 4박자 리듬인 폭스트롯에서 그 이름을 따왔고, 일본의 엔카는 정치적 메시지를 노래에 담아 전달하던 연설가에서 시작됐다. 출발점은 비슷했을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며 각 나라의 기질에 맞게 옷을 갈아입었다. 가장 큰 차이는 역시 리듬과 그 리듬을 타는 감정이다.
엔카는 아주 느리고 애절한 느낌이 강하다. 일본 특유의 꺾기 기법을 써서 슬픔을 안으로 꾹꾹 눌러 담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듣고 있으면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지는 고독함이 느껴진다.
반면 한국의 트로트는 특유의 뽕짝거리는 리듬감이 생명이다. 가사는 눈물 젖은 빵을 말할지라도 리듬은 어깨를 들썩이게 만든다. 슬픔을 흥으로 승화시키는 우리 민족 특유의 해학이 녹아 있는 셈이다.

2. 시대를 풍미한 한일 대표 가수들의 전성시대
시대를 풍미한 가수들의 면면을 봐도 흥미롭다. 1960년대와 70년대는 그야말로 전설들의 시대였다.
한국에는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가 동백아가씨로 온 국민의 눈시울을 적셨고, 일본에는 미소라 히바리가 독보적인 가창력으로 엔카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이후 80년대 들어 한국은 남진과 나훈아라는 두 거물이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트로트를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일본 역시 모리 신이치나 이츠키 히로시 같은 실력파들이 엔카의 인기를 지탱했다.

3. 지금 우리 곁의 트로트 열풍
세월이 흘러 지금 두 장르의 모습은 꽤 대조적이다. 일본의 엔카는 중장년층이 옛 추억을 떠올리며 듣는 전통적인 장르로 남은 반면, 한국의 트로트는 젊은 세대까지 열광하는 가장 트렌디한 장르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 엄청난 열풍의 시작에는 송가인이 있었고, 그 흐름을 거대한 문화 현상으로 완성한 인물은 단연 임영웅이다.
임영웅은 정통 트로트의 맛을 살리면서도 세련된 감성을 더해 전 세대를 하나로 묶어버렸다. 여기에 영탁, 이찬원, 김호중, 정동원, 장민호 같은 개성 넘치는 가수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트로트는 이제 대한민국에서 가장 생명력 넘치는 음악이 됐다.
결국 트로트든 엔카든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은 같다. 다만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일본은 조금 더 차분하고 내면적이라면, 우리는 더 활기차고 역동적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청춘의 시계를 헌신해서 마침내 세계 10대 강국 대한민국을 이룬 우리의 중장년 세대들은 그들의 자녀들의 손을 잡고 오늘도 TV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구성진 가락을 들으며 우리네 삶의 애환을 잠시나마 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