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카야 한 번 가볼까?" 하고 요즘 한국에서 이자카야에 들어가 본 분들은 계산서를 받아들고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보셨을 겁니다. "둘이서 맥주 몇 잔 하고 안주 몇 개 시켰는데 왜 이렇게 비싸지?"
한국에서 '이자카야'는 어느새 고급 일식 술집이라는 이미지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본고장 일본에서의 이자카야는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급스럽기는커녕, 한국의 동네 호프집이나 오래된 포장마차에 더 가까운 서민들의 공간이에요. 그 간극을 모르면 일본 여행 가서 엉뚱한 곳에서 한국식으로 주문하다 당황하기 쉽습니다.

저는 2000년대 초반 도쿄에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시나가와(品川)구의 한 전철역 근처에 살면서, 퇴근길에 동네 이자카야를 수도 없이 드나들었지요. 그 시절의 일본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한국보다 모든 것이 두세 배는 비쌌고, 거리에는 한국어 간판이 전혀 없었으며, '한류'라는 말도 아직 세상에 없던 때였어요. 일본은 한국이 따라가기엔 한참 멀리 있는 '선진국'이었고, 저 같은 외국인 직장인들은 월급 받으면 생활비 계산부터 한숨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때 직접 보고 느낀 일본 이자카야의 진짜 모습과, 한국인이 흔히 놓치는 5가지 차이점을 정리해드리려 합니다. 그리고 글 말미에는 20여년 만에 뒤집힌 풍경 하나도 함께 나눠보려 해요.
1. 이자카야는 번화가가 아니라 '전철역 동네'에 있다
한국에서 이자카야 하면 홍대, 강남, 이태원 같은 번화가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일본의 진짜 이자카야는 오히려 평범한 주택가 전철역 근처에 가장 많습니다. 제가 살던 시나가와구의 전철역도 그랬습니다. 퇴근길에 역에서 내리면, 역 주변 골목에 작은 이자카야들이 나란히 있었고, 동네 사람들이 하루 일을 마치고 한두 잔 걸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풍경이 일상이었어요.
손님도 특별한 날 온 손님이 아닙니다. 넥타이 풀어헤친 샐러리맨, 동네 자영업자, 혼자 온 할아버지 단골까지. 한국 포장마차가 '오늘 한 잔 하러 작정하고 가는 곳'이라면, 일본 이자카야는 '지나가다 잠깐 들르는 곳'에 훨씬 가까웠습니다.

2. 바(bar) 형태가 기본 — '다치노미(立ち飲み)'라는 세계
두 번째 충격 포인트는 가게 구조입니다. 한국 이자카야는 테이블 좌석 중심이지만, 일본 현지 이자카야는 카운터 바 형태가 훨씬 많습니다. 손님은 카운터에 앉아 주인장 앞에서 한두 잔 하면서 짧은 대화를 주고받는 식이에요. 옆자리 손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는 분위기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국인이 가장 신기해하는 것이 바로 다치노미(立ち飲み). 한자 그대로 '서서 마신다'는 뜻인데, 서서 마시는 이자카야 형태를 말합니다. 다만 오해 없이 짚어드리면, 다치노미라고 해서 무조건 다 서서 마시는 것은 아닙니다. 카운터 의자가 있는 곳도 있고, 높은 카운터 테이블 형태로 반쯤 기대서 마시는 곳도 있어요. 핵심은 '오래 앉아있지 않고 짧게, 가볍게 한 잔'이라는 콘셉트입니다. 일본에서 다치노미는 1990년대 후반 불황기에 부활해서, 최근까지 '퇴근 후 30분 한 잔'이라는 직장인 문화의 상징으로 오히려 더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3. 가격은? 맥주는 한국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저렴
이제 가장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가격.
2000년대 초반 당시 제 체감으로는, 일본 전반의 물가는 한국의 두세 배였습니다. 식료품, 교통비, 집세 모두 부담스러웠어요. 서울에서 편하게 먹던 것도 도쿄에선 한 번 더 지갑을 들여다봐야 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맥주처럼 서민들이 마시는 술은 한국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저렴했습니다. 물가가 높아도 '서민의 한 잔'만큼은 양보하지 않는 나라였던 거죠.
지금은 어떨까요. 2025년 기준 일본 이자카야 생맥주 한 잔은 보통 400~500엔(약 3,800~4,700원) 수준입니다. 다치노미 같은 서서 마시는 곳은 300엔대에 마실 수 있는 곳도 흔합니다. 체인 이자카야에서는 1인당 1,500~2,500엔(약 14,000~24,000원) 정도면 맥주 몇 잔에 안주 서너 개를 충분히 즐길 수 있어요.
반면 한국 이자카야는 생맥주 한 잔에 6,000~9,000원, 안주 한 접시에 15,000~25,000원이 예사입니다. 두 사람이 가볍게 마셔도 5~7만 원은 기본이죠. 본고장보다 훨씬 비싼 셈입니다. 이건 재료값 차이라기보다는, 한국에서 이자카야가 '고급 일식 술집'으로 컨셉 포지셔닝되면서 생긴 카테고리 가격 거품에 가깝습니다.
잠깐 생각해보면 묘한 기분이 듭니다. 20여년 전 도쿄에서 저는 '일본 물가 참 무섭다'며 한 끼, 한 잔을 아껴가며 살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입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이자카야 한 번 가면 그때 도쿄에서 쓰던 돈보다 더 많이 나옵니다. 같은 이자카야 콘셉트, 같은 종류의 맥주와 안주인데, 이제는 한국이 더 비싼 세상이 된 거죠.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는 걸, 계산서 한 장이 조용히 알려주는 순간입니다.
4. 의외의 고급 술, 진로 — '양주 대접' 받던 한국 소주
재미있는 건 일본 이자카야에서 뭐가 비싼 술이었냐는 겁니다. 맥주나 사케가 아니라, 놀랍게도 한국 소주 '진로(眞露)'가 일본에선 양주급으로 대접받는 고급 술이었어요.
당시 제 동네 이자카야에서 진로는 양주만큼 비싼 술이었습니다. 맥주 한 잔이 몇백 엔이면 충분한데, 진로 4홉들이 큰 병(720ml)은 확실히 체급이 다른 가격이었죠. 그래서 한 번에 다 마시기엔 부담스러우니까, 일본 단골손님들은 자기 병을 '키프(keep)' 해두고 다음에 와서 조금씩 나눠 마시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더 재미있는 건 보관 장소였어요. 진로 키프 병은 냉장고가 아니라, 이자카야 벽면 선반에 양주들과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위스키, 브랜디 같은 양주 병들 사이에 자기 명함이나 이름표를 붙인 진로 병들이 쭉 놓여 있는 풍경이었지요. 한국에선 소주가 서민의 술이지만, 바다 건너 일본에선 같은 진로가 양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특별한 날 꺼내 마시는 술' 대접을 받는다는 게, 당시 저에겐 꽤 인상 깊은 문화 차이였습니다.

5. 조용하고 짧게 — '회식'이 아니라 '일상'
마지막으로 분위기입니다. 한국 이자카야는 회식, 생일, 환송회 같은 '이벤트'의 공간인 경우가 많아 시끌벅적합니다. 반면 일본 현지 이자카야는 대부분 혼자 또는 두세 명이 조용히 한두 시간 머물다 가는 곳이에요.
"건배!" 하고 잔을 부딪히는 소리 외에는 큰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주변 손님 눈치 보지 않고 목소리 높여 떠들거나, 한국식으로 잔을 돌리면 바로 외국인임이 티가 납니다. 저도 처음엔 한국식 분위기로 갔다가 주인장이 웃으면서 "한국 분이세요?" 하고 말을 걸었던 기억이 있네요.
정리 — '고급 술집' 이미지는 오해입니다
정리하면, 일본의 이자카야는 한국인이 머릿속에 그리는 '고급 일식 술집'이 아니라 한국의 동네 호프집이나 오래된 단골 선술집에 훨씬 가깝습니다. 서민들이 부담 없이 들르는 일상의 공간이고, 맥주 값은 한국 편의점 수준이에요. 다음번 일본 여행 가시거든 화려한 번화가 이자카야 말고, 숙소 근처 전철역에서 내려 골목을 한 번 둘러보세요. 거기에 진짜 이자카야가 있습니다.
🍶 꿀팁 체크 포인트
- ✔ 번화가보다 역 근처 작은 이자카야가 진짜입니다
- ✔ 생맥주 주문은 "나마비루 오네가이시마스 (生ビールお願いします)"
- ✔ 1인 예산 1,500~2,500엔이면 충분합니다 (체인 기준)
- ✔ 자리에 앉자마자 나오는 작은 안주는 '오토시(お通し)' — 자릿값이라 거부 못해요
- ✔ 다치노미(서서 마시는 이자카야)는 더 저렴하고 현지 느낌 제대로 납니다
- ✔ 조용히, 짧게, 혼자 가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맺음말 — 25년 만에 뒤집힌 풍경
글을 마치면서 한 가지만 덧붙이고 싶습니다.
2000년대 초반, 제가 도쿄에 살던 시절의 일본은 한국이 올려다보던 '선진국'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한국보다 한 발짝씩 앞서 있다고 느꼈던 시대였고, 저처럼 일본인들과 함께 근무하던 한국인들에 대한 인식은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이 현지에서 좀 배우고 세련된 동남아 외노자를 보는 듯한 시선이었죠. 한류(韓流)라는 말이 아직 생기기 전이었고,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나 K-POP을 보는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 시절 일본인 동료들에게 "한국 가수 아는 사람 있어요?" 하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정해져 있었습니다. 조용필, 그리고 김연자 선생님. 그게 전부였어요. 엔카 무대에서 활동하시던 김연자 선생님과, 아시아의 별이었던 조용필. 그 두 이름이 당시 일본인들이 아는 '한국 가수'의 전부였습니다. 지금 일본 젊은이들이 BTS, 블랙핑크, 뉴진스를 자기 일상처럼 이야기하는 세상을 그 시절에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진로 소주가 양주 선반에 올라가 있던 그 이자카야 풍경도, 그 시절의 감각을 상징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25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요. 한국 드라마와 K-POP은 일본 젊은이들의 일상이 되었고, 일본 음식과 술을 이제는 한국에서 오히려 더 비싸게 먹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같은 이자카야, 같은 맥주인데 누가 더 '프리미엄'이 되었는지는 계산서가 말해주죠.
어느 쪽이 낫다 못하다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한 세대가 지나는 동안 두 나라의 풍경이 이렇게 뒤바뀔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변화의 한복판에 우리 중장년 세대가 서 있다는 것 — 이자카야 이야기 하나에도 그 시간의 무게가 담겨 있습니다.
다음번 일본 여행에서 동네 이자카야에 앉아 생맥주 한 잔 하실 기회가 있다면, 한 번쯤 그 시절을 떠올리며 천천히 한 모금 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아마 맥주 맛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지실 겁니다.
일본 술 종류가 헷갈리신다면, 정종·청주·사케 차이 완전정리 글에서 더 자세히 다뤘으니 함께 읽어보시면 좋습니다. 이자카야에서 사케를 주문할 때 라벨 보는 법이 궁금하시다면 이자카야 사케, 알고 마시고 있나요? 글도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