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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한 통도 못 받는 스승의 날 — 우리 때 학교는 그랬는데, 그 사이 무엇이 달라졌을까

kafe 2026. 5. 6.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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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학교는 5월 15일이 휴무예요."

 

며칠 전 후배 하나가 그러더라. 처음 들었을 땐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스승의 날에 학교를 안 간다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주변에 물어보니, 알고 보니 흔한 일이었다. 어떤 학교는 행사를 아예 안 하고, 어떤 학교는 재량휴업일로 지정해버리고, 또 어떤 학교는 "감사 편지 한 통도 부담스럽다"는 분위기라고 했다.

우리 때는 분명 그렇지 않았다. 5월이 다가오면 학교 앞 꽃집이 술렁였고, 반장이 "내일 카네이션 한 송이씩 사 와"라고 외쳤고, 책상 위엔 알록달록한 꽃이며 작은 선물이 쌓였다. 그게 평범한 5월 15일의 풍경이었는데, 어쩌다 우리는 편지 한 통도 못 보내는 시대까지 오게 됐을까. 그리고 정말, 그때가 더 좋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기억하는 스승의 날

우리가 기억하는 스승의 날 풍경

1980년대 국민학교를 다녔던 사람이라면 풍경이 비슷할 것이다. 5월 14일 저녁, 동네 꽃집에서 카네이션 한 송이씩 사다 책상 위에 올려놓고, 다음날 아침 가방에 조심스럽게 넣어 학교에 갔다. 반장은 며칠 전부터 "한 명당 천 원씩 걷자"고 다녔고, 그 돈으로 작은 케이크나 화병이나, 좀 더 가는 학년이라면 손수건이나 만년필 같은 걸 사서 담임 선생님 책상 위에 올려뒀다.

그게 학생들 사이의 풍경이었다면, 부모들 사이엔 또 다른 풍경이 있었다. 반장이나 임원 학부모, 육성회장이 돈을 모아서 선생님들을 동네 비싼 식당에서 회식시켜 드리는 게 흔한 일이었다. 식사가 끝나면 선물이나 봉투가 따로 건네졌다. 가정통신문엔 "촌지 절대 안 받습니다"라고 적혀 있었지만, 현실은 그 문구와 거리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이지만 그땐 그게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좋은 기억도 분명히 있다. 한스밴드의 '선생님 사랑해요'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마음이 일렁였고,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난 뒤에도 5월이 되면 옛 담임 선생님께 전화 한 통씩 드리는 게 자연스러웠다.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었던 선생님들이 분명히 계셨다.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게 정말 좋기만 한 풍경이었을까

지나고 나서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그때 그 풍경엔 그늘이 분명히 있었다.

내 친구 중에 어머니가 육성회장이었던 아이가 있었다. 그 친구가 담임 선생님의 편애를 받았다는 건 반 아이들 모두가 알았다. 선생님이 그 친구에게 더 자주 발표를 시켰고, 작은 잘못엔 눈을 감아주셨고, 임원 자리도 자연스럽게 그 친구에게 돌아갔다. 그땐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도 안 했다. "어머니가 학교 일을 많이 하시니까"가 모든 설명이었다.

지금 와서 보면 그건 명백한 차별이었다. 부모의 돈과 시간이 자식의 학교생활 평가를 좌우하는 구조. 학부모가 회식 자리를 마련하고 봉투를 건네면, 내 자식이 그만큼 더 보살핌을 받는 시스템. 그걸 우리는 '치맛바람'이라고 불렀고, 그 단어 자체에 약간의 농담 같은 가벼움이 있었지만, 사실은 가장 무거운 종류의 불공정이었다. 누군가의 어머니가 회장 직을 못 맡았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자식은 보이지 않는 손해를 봤다.

그땐 그게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모두가 그렇게 했고, 그렇게 안 하면 우리 아이가 손해 본다는 두려움이 있었고, 그래서 더 많이 했다. 거기에 끼지 못하는 가정의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밀려났다. 누구도 큰 소리로 그게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 그 풍경의 공범이었다.

분기점은 2016년 9월 28일

스승의 날 풍경을 결정적으로 바꾼 건 2016년 9월 28일 시행된 '청탁금지법', 흔히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법이다. 공직자에 대한 부정청탁과 금품 수수를 금지하는 이 법은 교사도 적용 대상으로 포함했다. 그때부터 모든 게 달라졌다.

법이 정한 기준은 단순한데 엄격하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현재 자기 자녀를 가르치는 담임 선생님께 개인적으로 선물하는 건 금액과 무관하게 금지다. 5천 원짜리 빵 한 개도, 5만 원짜리 꽃다발도, 학생들이 돈 모아 산 5만 원 이하의 단체 선물도 모두 안 된다. 학부모회 명의로 모은 돈도 마찬가지다. 이유는 명확하다. 평가와 지도를 담당하는 교사와 학생 사이에는 '직무 관련성'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우리 때 그 회식 자리, 그 봉투, 그 치맛바람의 시대를 끝낸 법이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예외는 딱 하나, 학생 대표가 공개적으로 전달하는 카네이션 한 송이다. 청탁금지법 제8조 제3항 제8호의 '사회상규에 따라 허용되는 금품'에 해당한다는 국민권익위원회의 해석에 따른 것이다. 반장이나 학급 대표가 반 친구들 보는 앞에서 담임 선생님께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 것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한 명 한 명 따로따로 가져가는 건 안 된다.

가장 안전한 건 손편지다. 학생이 직접 쓴 편지나 카드는 청탁금지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마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법이 그것까지는 막지 않기 때문이다.

법보다 먼저 변한 건 학교의 마음이었다

법보다 먼저 변한 건 학교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진짜 변화는 법 그 자체보다 그 이후에 왔다. 법이 만든 건 명확한 선이었지만, 그 선이 만든 분위기가 더 컸다.

요즘 적지 않은 학교가 5월 15일을 재량휴업일로 지정한다. 재량휴업일은 학교장의 재량으로 수업을 하지 않는 날인데, 한 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학교는 "스승의 날 행사 자체가 부담"이라는 이유로 아예 학교 문을 닫는다. 학생도, 학부모도, 교사도 모두 어색해하는 그 하루를 굳이 같이 보내느니 차라리 안 만나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다.

휴무까지 가지 않더라도 행사를 줄이거나 없애는 학교가 늘었다. 단체 노래도, 꽃 달기 행사도, 사은회도 형식적으로만 진행되거나 아예 사라졌다. 한 교사 단체 인터뷰에서는 "감사 편지 한 장 받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날이 됐다"고 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한 가지 이유로는 설명이 안 된다. 위에서 내려온 청탁금지법이 첫 번째 압력이었고, 옆에서는 SNS 시대에 '선물 인증' 같은 학부모 간 비교가 새로운 부담을 만들었다. 그리고 안에서는 2023년 서이초 사태로 상징되는 교권 추락이 결정타가 됐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 자체가 위태로운 시대에, 형식적인 감사일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회의가 학교 안에서 자라났다.

각박하지만, 그래도 이해는 된다

솔직히 처음엔 이 변화가 너무 각박하게 느껴졌다. 카네이션 한 송이도 못 보내고, 편지 한 통도 부담스럽다는 시대라니. 우리 때의 그 따뜻함은 어디로 갔나 싶었다.

그런데 우리 때를 다시 돌아보면, 그 따뜻함의 이면엔 분명한 어두움이 있었다. 회식 자리에 끼지 못한 부모의 아이들, 봉투를 못 건넨 부모를 둔 아이들, 그래서 보이지 않게 밀려났던 누군가들. 우리는 그걸 모르거나 알면서도 못 본 척했다.

청탁금지법이 만든 변화가 각박해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그 법이 끝낸 건 우리가 끝내지 못했던 그 불공정의 풍경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지금의 스승의 날이 어색하고 쓸쓸해 보여도, 그 어색함은 우리가 만든 어두움을 청산하는 과정에서 따라온 비용일지도 모른다. 어떤 풍경이 사라질 때, 거기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함께 있었다. 좋은 것만 골라서 남길 수는 없다는 게, 시대가 바뀐다는 일의 진짜 모습이다.

그래도 남은 것들, 새로 생긴 것들

그렇다고 모든 게 사라진 건 아니다. 형식이 줄어든 자리에 다른 것들이 생겨났다.

가장 흔한 건 손편지와 롤링페이퍼다. 반 친구들이 한 줄씩 돌려가며 쓰는 종이가 카네이션을 대신하는 가장 흔한 방식이 됐다. 어떤 학교는 학생들이 영상 편지를 만들어 단체로 전달하고, 또 어떤 학교는 '사제동행 프로그램' 같은 공식 행사를 따로 만들어서 그 안에서만 감사 표현을 한다.

졸업한 뒤에 찾아가는 문화도 일부는 살아 있다. 졸업한 학생이 옛 은사를 찾아가는 건 청탁금지법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100만 원 한도 안에서 선물도 가능하다. 다만 직접 학교까지 찾아가기보다 연락 한 통, 안부 메시지 하나로 대신하는 경우가 더 흔해졌다. 시대가 그렇게 변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건 2025년부터 5월 15일이 '세종대왕 나신 날'이라는 국가기념일로 새로 지정됐다는 점이다. 스승의 날을 5월 15일로 정한 이유가 원래 세종대왕 탄신일이었으니, 어쩌면 무게중심이 슬며시 옮겨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올해 5월 15일은

법은 명확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 자녀 학교에 카네이션을 보내고 싶은 학부모는 보낼 수 없고, 옛 담임 선생님께 마음을 전하고 싶은 학생은 전할 방법을 고민한다. 그 사이 어떤 학교는 아예 문을 닫는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형식이 사라진다고 마음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자녀가 직접 쓴 짧은 편지 한 통, 졸업한 뒤 보낸 안부 메시지 하나, "선생님 잘 지내세요"라는 통화 한 번. 이런 것들은 법이 막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가장 오래 남는 건 그런 것들이다. 봉투도, 비싼 선물도, 회식 자리도 아닌, 그냥 한 사람을 떠올리는 마음.

1958년 강경의 한 여학교에서 청소년적십자 학생들이 병석에 누워 계신 옛 선생님을 찾아간 게 스승의 날의 시작이었다. 그때 학생들은 카네이션도 선물도 안 들고 갔다. 그저 찾아갔다. 그게 처음의 마음이었다. 60여 년이 지나 형식은 많이 변했지만, 그 처음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떠올리면, 올해 5월 15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답이 의외로 어렵지 않다.

한 사람을 떠올리는 날. 그것만으로도 스승의 날의 본래 의미는 충분히 산다. 어쩌면 우리 때보다 지금이 그 본래 의미에 더 가까워진 걸지도 모르겠다.

 

다음 글 예고 | 다음 편에서는 일본·미국·중국 등 다른 나라의 스승의 날 풍경을 비교합니다. 한국이 유난한 게 아니라 사회마다 결이 다른 거였다는 사실을, 외국 사례를 통해 천천히 살펴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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