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부에서는 1985년 삼호어묵이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에 "어묵"이라는 말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도미표 생선묵" 같은 과도기 용어가 실제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것도 함께 확인했지요.
(1부를 못 보신 분들은 먼저 읽고 오시면 이해가 쉽습니다.)
👉 제가 어릴 땐 "어묵"이란 말이 없었습니다 — 1부: 도미표 생선묵의 시대
제가 어릴 땐 "어묵"이란 말이 없었습니다 — 1부: 도미표 생선묵의 시대
포장마차 앞에서 "오뎅 한 꼬치요" 하고 주문하는 게 자연스러운 분들, 어머니가 도시락 반찬으로 싸주시던 그 빨갛고 납작한 걸 "덴뿌라 조림"이라고 부르셨던 기억이 있는 분들. 네, 바로 그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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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드릴 이야기는 더 흥미롭습니다. 우리가 40년 동안 아무렇지 않게 써온 "덴뿌라"와 "오뎅"이라는 말, 정작 일본에서는 그 음식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덴뿌라(天ぷら)의 진짜 의미

일본에서 덴뿌라는 튀김 요리 전반을 부르는 말입니다. 우리가 아는 새우튀김, 채소튀김이 그 대표 예시지요. 어묵이 아닙니다.
그럼 왜 한국에서는 어묵을 "덴뿌라"로 부르게 됐을까요? 답은 지리적 거리에 있습니다.
일본 규슈 지방(카고시마·후쿠오카 일대)에서는 예외적으로 튀긴 어묵을 "덴푸라"라고 부르는 습관이 있었어요. 에도 시대 말, 류큐국(현 오키나와)과 교류하던 규슈 지역에서 사쓰마아게라는 튀김 어묵을 만들면서 그걸 "덴푸라"로 칭했거든요.

부산이 이 규슈와 지리적으로 가깝다 보니, 일제강점기에 부산으로 들어온 "덴푸라=튀긴 어묵"이라는 규슈식 용법이 그대로 한반도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일본 본토 다른 지역 사람들은 지금도 덴푸라 하면 새우튀김 같은 튀김 요리를 떠올리는데, 한국 중장년만 어묵을 떠올리는 이 엇갈림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상황인 거지요. 일본인에게 "덴뿌라 주세요" 하면 그 사람은 새우튀김이나 채소튀김을 떠올릴 텐데, 우리는 오뎅 꼬치를 기대하고 있는. 40년 넘게 이런 엇갈림이 있었던 겁니다.
오뎅(おでん)의 진짜 의미
더 놀라운 건 오뎅입니다. 일본에서 오뎅은 가쓰오부시 육수에 무, 곤약, 달걀, 유두부, 어묵 등을 넣고 끓이는 전골 요리를 말합니다. 어묵 자체가 아니에요.
저는 이 사실을 20여년 전 도쿄에서 근무할 때 편의점에 들어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그때의 당혹감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겨울에 편의점에 들어가니 계산대 옆에 오뎅 코너가 있더군요. "아, 오뎅 먹어야지" 하고 고개를 기울여 봤는데, 정작 어묵은 구석에 조금 있고 무, 달걀, 곤약, 유부가 주인공처럼 놓여 있었습니다. 우리가 포장마차에서 보던 "기다란 오뎅 꼬치 통"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처음엔 "아, 오늘은 어묵이 다 떨어졌나 보다" 했는데, 아니더군요. 일본에서는 원래 오뎅이라는 음식이 그런 구성이었던 겁니다. 실제로 일본에서 오뎅 재료 인기 투표를 하면 TOP 3가 무, 계란, 곤약이라고 합니다. 어묵류는 순위가 그리 높지 않아요.
쉽게 비유하자면, 한국 사람이 수십 년 동안 "김치찌개"를 "김치"라고 부르면서 살아온 것과 비슷한 일이 벌어진 셈입니다. 전골 요리의 이름이 그 안에 들어가는 재료 하나의 이름으로 와전된 거지요.

왜 한국에서는 "오뎅 = 어묵"이 됐을까
일제강점기 부산에 어묵 공장이 들어서면서 일본의 가마보코·치쿠와·사쓰마아게 세 가지 제조법이 소개됐습니다. 이 중 사쓰마아게(튀긴 어묵)가 부산에서 "덴뿌라"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고, 이게 국물에 들어가 끓여지면서 자연스럽게 "오뎅"이라는 이름이 어묵 자체를 가리키는 말로 변해갔던 겁니다.
본래 오뎅은 "덴가쿠(田楽)"라는 일본 요리에 존칭 접두사 "お"를 붙여 축약한 말이라고 해요. 그런데 그 중 어묵이 가장 눈에 띄는 재료였으니, 한국에서는 오뎅과 어묵이 같은 뜻처럼 굳어져버린 거지요.
부산에서는 심지어 "간또"라는 말도 쓰였습니다. 일본에서 오뎅을 "칸토다키(關東炊き)"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게 "간또"로 줄어들어 부산 일부 지역에서는 오뎅 대신 "간또"라고 하는 어르신들도 계셨어요.

지금은 모두 "어묵"으로 통일
흥미롭게도 지금의 한국 젊은 세대는 거의 대부분 "어묵"이라는 말만 씁니다. "덴뿌라"는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가 쓰는 옛말, "오뎅"도 조금 옛스러운 표현 정도로 느껴지지요. 아직 분식집 간판에 "오뎅 1000원"이라고 쓰여 있긴 하지만, 주문할 때는 "어묵 꼬치 주세요"가 훨씬 자연스러워졌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오뎅"을 "어묵"의 비표준어로 등재해두었습니다. 언어는 이렇게 40년 동안 바뀌어 온 거지요. 삼호어묵이 1985년에 조용히 던진 "어묵"이라는 한 마디가, 한 세대가 지나는 동안 온 국민의 일상어가 된 겁니다.
2부 5줄 요약
- 덴뿌라(天ぷら)는 원래 튀김 요리 전반을 뜻하는 말이지, 어묵이 아니었습니다
- 한국이 덴뿌라를 어묵으로 오해한 건 규슈의 예외적 용법이 부산으로 유입됐기 때문입니다
- 오뎅(おでん)은 전골 요리 이름이고, 일본인이 꼽는 오뎅 재료 TOP 3는 무, 계란, 곤약입니다
- 일본 편의점 오뎅에는 어묵이 주인공이 아니라 무·달걀·곤약이 중심입니다
- 지금은 "어묵"이 표준어로 자리 잡았고, "오뎅"과 "덴뿌라"는 옛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작은 소회 하나
이 연재를 쓰면서 제 기억을 하나하나 자료와 맞춰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도미표 생선묵"이라는 기억도 막연히 남아 있던 건데, 찾아보니 포장지 이미지도, 1986년 TV광고 기록도 실제로 존재하더군요. 게다가 포장지에는 "생선묵"이라고 적혀 있는데 같은 브랜드 광고에서는 "생선어묵"으로 불렸던, 그 미세한 용어의 변화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40년 전 시장에서 어머니와 함께 오뎅 한 꼬치 사 먹던 풍경, 도시락 반찬으로 싸 가던 빨간 "덴뿌라 조림". 그 이름들이 어떤 길을 지나 지금의 "어묵"으로 정착했는지를 돌아보니, 한 음식의 이름에도 한 세대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구나 싶습니다.
혹시 오늘 저녁 식탁에 어묵이 올라오면, 잠깐 이 이야기를 떠올리며 드셔보셔도 좋겠습니다. 그 맛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지실지도 모르니까요.
👉 1부를 못 보신 분은 여기로: 제가 어릴 땐 "어묵"이란 말이 없었습니다 — 1부: 도미표 생선묵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