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마차 의자에 앉아서, 꼼장어구이에 소주 한 잔. 중장년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해보셨을 겁니다.
기름 냄새 자욱한 철판 위에서 꼼지락거리며 익어가는 꼼장어를 가위로 잘라 한 입. 그 쫄깃한 맛에 소주가 술술 넘어가지요.

그런데 이 꼼장어, 우리가 맛있게 먹고 있는 이 음식의 뒷이야기를 아시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왜 전 세계에서 한국인만 이걸 먹게 됐는지, 그리고 그 시작이 왜 이렇게 안타까운지.
이전 글에서 꼼장어가 사실 물고기도 아닌 5억 년 된 원시 생물이라는 이야기를 드렸었는데, 오늘은 그 꼼장어를 우리가 먹게 된 진짜 사연을 풀어보려 합니다.
👉 장어 종류 완전정리 — 민물장어·바다장어·꼼장어, 이것만 알면 됩니다
"이거 뱀 아니야?" —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말
꼼장어를 처음 접하는 사람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이거 뱀 아니야?"
생김새가 뱀처럼 길고 미끌미끌하니까 그렇게 오해하는 거지요. 예전엔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이 소재를 종종 써먹었습니다. 누군가가 맛있게 먹고 있는데 옆 사람이 "그거 뱀이야"라고 하면 화들짝 놀라는 장면, 어디선가 보신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앞서 장어 글에서 정리해드린 대로, 꼼장어는 뱀이 아닙니다. 그리고 장어도 아닙니다. 심지어 물고기도 아닙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먹장어는 "원구류(圓口類)" 또는 "무악류(無顎類)"에 속하는, 턱도 없고 척추뼈도 없고 지느러미도 없는, 현존하는 가장 원시적인 생물 중 하나입니다. 5억 년 전 화석에서 비슷한 형태가 발견될 정도로 오래된 생물이에요.

그런 생물을, 전 세계에서 한국인만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아요. 미국 디스커버리 채널의 한 진행자가 한국식으로 구워 먹어봤다가 구역질을 했다는 에피소드도 있을 정도입니다.
왜 한국인만 이걸 먹게 됐을까요? 그 시작은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원래 먹는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 가죽 때문에 잡은 생물
꼼장어, 정확히는 먹장어는 원래 한국에서도 먹지 않았습니다. 잡지도 않았어요. 생김새가 기괴하고, 위협을 받으면 엄청난 양의 점액을 분비하는 징그러운 생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이 먹장어에서 뜻밖의 가치를 발견합니다. 바로 "가죽"이었어요.
먹장어의 가죽은 무두질을 하면 놀랍도록 질기고 부드러우며 광택이 우수합니다. 소가죽보다 질기고, 물에 젖어도 망가지지 않는 특성까지 있었어요. 일본인들은 이 가죽으로 나막신 끈과 일본군 모자 테 같은 군수물자를 만들었습니다.
부산 자갈치시장 인근에 먹장어 피혁(가죽) 공장이 들어섰고, 부산 연안에서 대량으로 잡힌 먹장어의 가죽은 벗겨져서 일본 본토로 보내졌습니다. 가죽만 일본으로 간 거예요. 살은 버려졌습니다.
버려진 살을 배고픈 사람들이 주워 먹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안타까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가죽을 벗기고 남은 먹장어의 살은 공장 앞에 그냥 버려졌습니다. 일본인들에게는 쓸모없는 부산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식민지 치하에서 배를 곯던 한국인들이 그 버려진 살을 주워다 구워 먹기 시작한 겁니다.
최초의 식용 기록은 부산과 울산 사이 중간 지점, 지금의 기장 일대로 추정됩니다. 가죽을 쓰고 남은 것을 배가 고파서 구워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이후 광복을 거쳐 6·25전쟁이 터지자, 전국에서 피란민들이 부산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자갈치시장으로 밀려든 피란민들은 여전히 가죽 공장에서 버려지는 먹장어 살을 주워다 연탄불에 구워서 팔기 시작했어요. 이것이 우리가 아는 "꼼장어 구이"의 시작입니다.
일본인 저자 다케쿠니 도모야스는 자신의 책 "한일 피시로드"에서 이 역사를 추적한 뒤, 한 마디로 정리했습니다. "먹장어 어업은 식민지 수탈의 산물이다."
일본에서는 먹지 않는 이 생물이, 식민지 수탈 과정에서 가죽만 빼앗기고, 배고픈 한국인에게 남겨진 "버려진 음식"이었다는 겁니다.
기장의 짚불꼼장어 — 본고장이 된 이유

부산 기장군이 짚불꼼장어의 본고장으로 유명한 이유도 이 역사와 맞닿아 있습니다.
기장 앞바다가 원래 먹장어 서식지였고, 일제강점기에 이 지역에서 대량으로 잡힌 먹장어의 가죽이 벗겨진 뒤 남은 살을 기장 사람들이 먹기 시작한 겁니다. 짚불 위에 산 꼼장어를 툭툭 던져 넣고, 구수한 냄새가 퍼지면 접시에 담아, 목장갑 끼고 껍질 벗겨 소금장에 찍어 먹는 그 방식이 기장에서 시작됐어요.
지금도 기장에 가면 짚불꼼장어 집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짚불 특성상 연기가 어마어마하게 나서, 눈물 콧물 쏟아지며 먹어야 한다는 것도 기장 짚불꼼장어만의 독특한 경험이지요.
버려진 음식에서 한국의 대표 서민 안주가 되기까지
돌이켜보면 참 아이러니합니다.
일본인이 가죽만 가져가고 버린 고기를, 배고픈 한국인이 주워 먹은 것이 시작이었는데, 그게 지금은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이 됐습니다. 자갈치시장에만 100여 개의 꼼장어집이 집단으로 모여 있고, 양념꼼장어·소금구이·짚불구이·꼼장어묵·꼼장어껍질구이까지 다양한 메뉴로 발전했어요.
아귀도, 물메기도 비슷한 사연을 갖고 있습니다. 원래는 버려지던 생선이었는데, 가난한 시절에 먹기 시작해서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 별미가 된 음식들이지요. 부산의 대표 음식 상당수가 이런 "배고픈 시절의 지혜"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맛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 한구석이 먹먹합니다.
다음에 꼼장어를 드실 일이 있으면, 한 번만 떠올려보세요. 이 맛있는 안주가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어떤 시간이 흘렀는지를.
오늘 이야기 5줄 요약
- 꼼장어(먹장어)는 원래 한국에서도 먹지 않았고, 잡지도 않았던 생물입니다
- 일제강점기에 먹장어 가죽의 가치가 발견되어, 부산에 피혁 공장이 들어섰습니다
- 가죽은 일본으로 보내지고, 버려진 살을 배고픈 한국인이 주워 먹기 시작한 것이 유래입니다
- 6·25전쟁 때 피란민들이 자갈치시장에서 본격적으로 팔기 시작하면서 서민 안주로 자리 잡았습니다
- 전 세계에서 먹장어를 널리 식용하는 나라는 한국뿐입니다.
꼼장어가 장어도 아니고 물고기도 아니라는 사실이 궁금하신 분은 이전 글을 참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