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라멘집에 처음 가면 자판기 앞에서 당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버튼은 일본어 투성이고, 주문 흐름도 한국과 다르고, 옆 사람은 후루룩 소리를 내면서 먹고 있고요. 앞서 쓴 일본 라멘 종류 완전정리에서 라멘 국물 종류(돈코츠·미소·쇼유·시오)를 정리해드렸다면, 이번 글은 그다음 단계입니다. 라멘집 입구에 들어선 순간부터 나오기까지 알아두면 좋은 주문 용어들을 정리합니다.
입구 자판기 앞에서 — 포스기 주문방식의 원조 국가
일본 라멘집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입구에 있는 자판기입니다. 요즘은 우리나라에도 일반화 되었지만, 제가 생활하던 20여년전 일본에서는 이미 보편화되어 있었지요. 문을 열고 들어가면 먼저 자판기에서 메뉴 버튼을 누르고 돈을 넣어서 식권을 뽑습니다. 그 식권을 들고 자리에 앉아 카운터나 테이블에 올려놓으면 점원이 가져가서 주방에 전달합니다.

그때 제가 도쿄 아키하바라역 근처에서 주말마다 들렀던 작은 라멘집이 딱 이 방식이었습니다. 돈코츠 국물 하나로 여러 메뉴를 운영했고, 카운터 자리와 2인용 테이블 10개 미만의 작은 가게였어요. 자판기에서 티켓 뽑고, 자리에 앉아서 테이블 위에 티켓을 올려놓으면 점원이 가져가고, 5분 안에 라멘이 나오는 방식이었습니다. 손님이 빨리 먹고 빨리 나가는 구조로 설계된 가게였어요.
아직도 일본은 자판기에서 현금만 받는 가게가 제법 있습니다. 500엔, 1000엔 지폐가 잘 들어가는지 미리 확인해두시고, 동전도 어느 정도 준비하시는 게 안전합니다. 최근에는 QR코드나 카드 결제 가능한 자판기도 늘고 있지만, 오래된 소규모 가게일수록 현금만 받는 경우가 많아요.
메뉴판에서 자주 보는 주문 용어

자판기 버튼에 적힌 글자들이 처음엔 낯설지만, 몇 개만 외워두면 대부분 해결됩니다.
오오모리(大盛り)는 곱빼기입니다. 면 양을 늘리는 옵션이에요. 한국에서 "면 많이 주세요"와 같은 개념. 추가 요금 100~200엔 정도 붙습니다. 오오모리 전용 버튼이 따로 있는 가게도 있고, 기본 메뉴 옆에 +100엔 식으로 표시된 곳도 있어요.
나미모리(並盛り)는 보통이고, 코모리(小盛り)는 소자입니다. 식욕이 많지 않은 분께 유용한데, 코모리 옵션이 있는 가게는 많지 않으니 없어도 당황하지 마세요.
카에다마(替え玉)는 면 리필, 사리 추가입니다. 이게 일본 라멘 문화의 재미있는 부분인데, 면을 다 먹었는데 국물은 아직 남아있을 때 면만 따로 추가로 받는 방식이에요. 150~200엔 정도면 면 한 덩어리를 더 얹어줍니다. 특히 돈코츠 전문점에서 보편적인 문화입니다. 국물이 진하니까 면만 더 먹어도 충분히 맛있거든요.
세트(セット)나 쇼쿠지츠키(食事つき)는 라멘에 교자나 공기밥이 함께 나오는 세트 메뉴입니다. 점심시간에 가성비 좋게 구성된 세트가 많아요.
면 굳기 주문 — 모든 가게가 묻지는 않습니다
일본 라멘집 매너 글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게 면 굳기 선택입니다. 카타메(硬め)는 딱딱하게, 후츠메(普通)는 보통, 야와라카메(柔らかめ)는 부드럽게. 하카타식 돈코츠 전문점에서는 바리카타(バリ硬)라는 "아주 딱딱하게" 옵션까지 있습니다.
돈코츠 국물은 워낙 진하고 걸쭉해서 면을 딱딱하게 삶아야 국물에 잘 어울린다는 이유로 카타메가 전통입니다. 면이 부드러우면 진한 국물에 잠겨 식감이 죽거든요. 그래서 하카타 출신 라멘 전문점은 대부분 주문할 때 굳기를 물어봅니다.
다만 모든 가게가 면 굳기를 묻는 건 아닙니다. 제가 아키하바라에서 갔던 그 가게도 굳기 옵션이 없었어요. 회전율이 중요한 소형 가게는 메뉴 단순화를 위해 고정 굳기로만 냅니다. 그러니 "주문할 때 굳기 안 묻네?" 싶어도 당황하지 마세요. 가게 스타일일 뿐입니다.
고명 추가 주문법
기본 라멘에 추가 고명을 얹고 싶으면 자판기에 별도 버튼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주 쓰는 용어만 정리합니다.
차슈(チャーシュー)
돼지고기 편육입니다. 라멘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고명이에요. 차슈 여러 장이 푸짐하게 올라간 버전을 차슈멘(チャーシュー麺)이라고 부릅니다.
아지타마(味玉)
간장에 조린 반숙 계란입니다. 노른자가 살짝 흐르는 정도로 익힌 게 제대로 된 아지타마예요. 보통 100~150엔 정도 추가 요금.
네기(ネギ)
파입니다. 파 듬뿍 얹은 버전을 네기라멘(ネギラーメン)이라고 부릅니다.
(옛날에 우리나라에서 한때 양파보다 "다마네기"라고 많이들 불렀죠? 그 "네기" 입니다.ㅎ)
멘마(メンマ)는 죽순 절임,
노리(のり)는 김,
모야시(もやし)는 숙주입니다.
이 네 가지가 라멘에 가장 흔히 올라가는 고명이에요.
제가 갔던 아키하바라 가게는 돈코츠 국물 하나로 메뉴를 차슈멘, 네기라멘, 타마고멘(계란면) 식으로 다양하게 만들었어요. 국물 재료를 최소화하고 고명 조합만 바꿔서 여러 메뉴를 내는 방식이 소규모 가게의 전형입니다.
한국인이 실수하기 쉬운 포인트
외국 가이드북에 잘 안 나오는 실전 매너 몇 가지입니다.
첫째, 면치기 소리를 내도 괜찮습니다. 한국에선 후루룩 소리 내면 매너 없다고 보는데, 일본 라멘·소바·우동 문화에선 소리 내서 먹는 게 맛있게 즐긴다는 표현입니다. 억지로 소리 낼 필요는 없지만 자연스럽게 나도 민망해하실 필요 없어요.
(다만 저는 일본에서 생활할때도 면치기를 싫어했습니다.ㅎ)
둘째, 카운터 자리에선 조용히 먹는 게 기본입니다. 일본 라멘집은 혼자 와서 빨리 먹고 나가는 문화가 강해요. 카운터에 앉으면 옆 사람과 굳이 대화하지 않고, 라멘에 집중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테이블석은 좀 더 자유롭고요.
셋째, 혼자서 드셔도 전혀 문제 없습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도 혼밥이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았지만 불과 몇년전만해도 혼자 밥먹는걸 성격이나 대인관계에 문제있는 선입견이 있었죠? 일본은 제가 생활하던 20여년전에도 오히려 그 이전부터 혼밥,혼술에 대해 아무런 편견도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혼자 드시는거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한눈에 보는 주문 용어 요약
| 일본어 | 뜻 | 사용 상황 |
|---|---|---|
| 오오모리 | 곱빼기 | 면 양 늘리고 싶을 때 |
| 카에다마 | 면 리필 | 국물 남았을 때 면 추가 |
| 카타메 | 딱딱하게 | 돈코츠 먹을 때 추천 |
| 차슈 | 돼지고기 편육 | 대표 고명 |
| 아지타마 | 반숙 계란 | 인기 추가 고명 |
| 네기 | 파 | 듬뿍 원하면 네기라멘 |
정리하며
일본 라멘집의 자판기 문화는 처음엔 낯설지만, 익숙해지면 오히려 편합니다. 메뉴를 고민 없이 빨리 주문할 수 있고, 계산 실수도 없고, 점원과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문제없거든요. 지금까지 정리한 용어만 알아두셔도 대부분의 라멘집에서 당황하지 않고 주문하실 수 있을 겁니다.
라멘 국물 종류가 궁금하시다면 일본 라멘 국물 4종 정리 글을, 라멘과 함께 사케 한 잔이 당기신다면 사케 종류 정리 글을 같이 보시면 좋습니다. 일본 이자카야 문화가 궁금하시면 도쿄 근무 시절 이자카야 이야기도 있습니다.
제가 아키하바라에서 매주 갔던 그 작은 라멘집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20년이 지났으니 바뀌었을지도 모르죠. 그래도 자판기 앞에서 티켓 뽑고, 카운터에 앉아 5분 만에 뜨거운 돈코츠 한 그릇을 해치우던 그 단순한 만족감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일본 라멘집의 진짜 매력이 거기 있다고 생각해요.